활자인쇄에 관한 초기지식과 그 이로운 점은 비록 북송의 교니활자에서 얻었다하더라도, 그것을 금속활자인쇄로 창안 발전시키는데 성공한 겨레는 바로 우리의 조상들이었다. 특히 금속활자 인쇄는 영토가 좁고 독서인구가 한정된 우리나라에 안성맞춤이어서 일찍이 고려조에서 발상 보급되어던 것
한글이라는 표음문자를 사용했지만, 금속활자가 발명된 고려 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문자는 한자였다. 한자는 표음 문자인 한글과 알파벳과는 다르게 표의 문자이므로 수천 개가 넘는 한자들의 모든 활자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큰 번거로움이 있었고, 조선시대의 주요 사상이었던 유
이 활자는 1668년(현종 9)에 수어청(守禦廳,)에서 김좌명(金佐明)이 갑인자체(甲寅字體)를 개주(改鑄)한 것으로써 대자(大字)는 6만 6100여 자(字), 소자(小字)는 4만 6000여 자이다.
교서관(뒤에 규장각으로 편입)으로 옮겨진 다음 교서관활자, 또는 운각활자(芸閣活字)라고도 하여, 이 활자는 무신자·교서
활자.
획이 굵고 강직한 인서체(印書體)인 것이 특징이며, 세종이 우리의 글자를 제정하고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인 점에서 그 의의가 큼
무신자 병용한글활자
1668년(현종 9)에 주조한 무신자와 함께 사용된 한글 금속활자이다.
1668년에서 1695년(숙종 21) 사이에 주조
숙종~영조 연간 『사서언
서론-한글의 자형과 서체는 한글 사용의 목적이나 도구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다.
한글의 자형과 서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래로, 한글을 사용하는 목적이나 그 사용도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다. 즉 글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반 인쇄체의 한글에서부터 인장